집 구석구석 실리콘을 쏘다가 결국 포기했다

집 구석구석 실리콘을 쏘다가 결국 포기했다

어제는 퇴근하고 돌아와서 화장실 샤워부스 틈새랑 베란다 창틀에 실리콘을 새로 쏘느라 거의 서너 시간을 보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유튜브에서 본 것처럼 예쁘게 마스킹 테이프 붙이고 헤라로 한 번에 싹 긁어내면 끝날 줄 알았다. 근데 막상 해보니까 이게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더라. 일단 기존에 붙어있던 곰팡이 핀 실리콘을 제거하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 실리콘 제거기를 사서 긁어냈는데, 이게 벽면이랑 타일 사이에 붙어있던 잔여물을 다 긁어내는 게 진짜 보통 일이 아니다.

낡은 실리콘 떼어내다가 지쳐버린 오후

욕실 실리콘 제거 작업만 해도 이미 진이 다 빠졌다. 낡은 실리콘이 고무줄처럼 툭툭 끊기는데, 벽지나 타일에 달라붙은 찌꺼기들은 칼로 살살 긁어야 했다. 그러다 실수로 타일 모서리를 살짝 건드려서 기스가 났는데, 그 순간부터는 그냥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애초에 업자를 불렀으면 한 십만 원에서 이십만 원 정도 들었을 텐데, 괜히 아껴보겠다고 이 고생을 하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이미 시작한 거니까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고, 땀은 뻘뻘 나고 허리는 끊어질 것 같았다. 특히 변기 테두리 쪽은 자세가 너무 안 나와서 나중에는 그냥 쪼그려 앉아서 거의 멍하니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반도체 공장 실리콘 부품이 떠오른 이유

멍하니 작업을 하다가 갑자기 뉴스에서 본 반도체 공장 실리콘 부품 얘기가 생각났다. 거기는 기계가 미세한 결함까지 다 잡아낸다는데, 나는 지금 집 구석 틈새 하나 제대로 못 메워서 낑낑거리고 있구나 싶어서 괜히 좀 헛웃음이 나왔다. 정밀함이 생명인 반도체 공정과는 차원이 다른 나의 이 무식한 인테리어 작업이라니. 실리콘 건을 누르는 힘 조절도 실패해서 어떤 곳은 실리콘이 떡처럼 두껍게 뭉치고, 어떤 곳은 아예 비어있어서 다시 쏘고 난리도 아니었다. 실리콘 한 통에 4천 원인가 5천 원 정도 주고 샀는데, 결과물은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결과보다 중요한 건 빨리 끝내는 것

결국 나중에는 예쁘게 바르는 걸 포기했다. 그냥 틈새만 안 보이게 꾹꾹 채워 넣는다는 생각으로 막 쐈다. 헤라로 문지르니까 실리콘이 옆으로 번지면서 더 지저분해지는 것 같아서, 그냥 손가락에 물 묻혀서 대충 쓱쓱 문질렀다. 누가 보면 정말 초보자가 한 티가 확 날 텐데, 솔직히 더 이상 신경 쓸 힘이 없었다. 예전에 친구 집 셀프 인테리어 도와줄 때는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내 집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손목도 시큰거리고 눈도 침침했다.

마무리되지 않은 찝찝함

작업을 다 끝내고 나니까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틀 한쪽은 실리콘이 마르면서 울퉁불퉁해졌고, 욕실 구석은 여전히 매끄럽지 못하다. 건설 현장하시는 분들이 왜 그렇게 돈을 받는지, 왜 그렇게 공기가 길어지는지 아주 조금은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했다. 사실 완벽하게 하려면 아예 틈새를 다 갈아내고 새로 타일을 붙이거나 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애초에 손대지 말았어야 했나. 지금도 베란다 쪽을 보면 마음이 좀 찝찝하다. 다시 다 뜯어내고 처음부터 할 용기는 없고, 그냥 세월이 지나서 먼지가 좀 앉으면 티가 덜 나겠지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이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댓글 3
  •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반도체 공장 얘기랑 비교하는 게 정말 와닿어요.

  • 벽면 긁어내기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네요. 제가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곰팡이 제거할 때도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천 원짜리 제거기 들고 고생했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라 그런지 한심한 마음이 드는데, 그래도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