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란다 구석에 핀 곰팡이와 마주한 주말
거창하게 인테리어를 새로 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그저 베란다 창가 쪽으로 습기가 맺히고, 그게 마르면서 거뭇하게 변해가는 꼴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을 뿐이다. 처음엔 동네 페인트 가게에서 대충 이름 좀 알려진 무독성 친환경 페인트라며 추천받은 제품을 덥석 집어 왔다. 가격은 4리터 한 통에 4만 5천 원 정도 했던가. 방문 페인트칠을 할 때 썼던 것보다 훨씬 비싸다고 느꼈지만, 냄새가 덜 난다는 말에 홀린 듯 결제했다. 그때만 해도 금방 끝날 줄 알았다. 창문 근처는 워낙 좁아서 붓 하나만 있으면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마스킹 테이프만 붙이다 지쳐버린 오후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상황은 생각보다 엉망이었다. 예전 집주인이 발라놓은 페인트가 군데군데 일어나 있었고, 그걸 긁어내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다이소에서 산 1천 원짜리 헤라로 벽을 긁어내는데, 이게 생각보다 소리가 요란했다. 아파트에서 이렇게 소리를 내도 되나 싶어 눈치가 보여 손에 힘을 잔뜩 줬더니 손목이 시큰거렸다.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는 데만 거의 2시간을 썼다. 창틀에 페인트가 묻지 않게 하려고 꼼꼼히 테이핑을 했는데, 나중에 떼어낼 때 페인트까지 같이 딸려 올라올 거라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 500미터가 아니라 고작 5미터 남짓한 벽을 다루는데도 진이 다 빠졌다.
칠해도 칠해도 얼룩지는 벽면의 정체
첫 번째 붓질을 하고 나서 거실에 앉아 잠시 쉬는데, 벽이 얼룩덜룩한 게 눈에 거슬렸다. 페인트가 너무 묽었나 싶어 원액을 그대로 붓에 묻혀 덧칠했다. 그런데 마르면서 더 기묘한 무늬가 생겼다. 마치 유로미장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표면이 툭툭 튀어나오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밑바탕 처리를 제대로 안 해서 기존 페인트 층이 불어난 것이었다. 밖에서는 외부 유리창 청소차가 윙윙거리며 지나가는데, 나는 집 안에서 곰팡이 핀 벽과 씨름하며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전문 인건비를 들여 사람을 부를 걸 그랬나 하는 후회는 늘 늦게 찾아오는 법이다.
예고 없이 시작된 보수 공사의 늪
다 마르고 나서 보니 군데군데 칠이 덜 된 곳이 보인다. 다시 페인트를 덧바르면 또 마르는 데 시간이 걸리고, 그동안 베란다 문을 닫아둘 수도 없어서 먼지가 다 달라붙었다. 예전에 친구가 이삿짐 옮기다가 실수로 벽지를 찢어먹었을 때 벽지 위에 페인트만 슥 덧바르면 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는데, 그거 다 거짓말이다. 결국 겉면이 울퉁불퉁해지니까 보기 싫어서 전체를 다 덮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페인트 양은 자꾸 부족해지고, 결국 남은 페인트에 물을 조금 섞어서 양을 늘리는 편법까지 썼다. 어디선가 본 듯한 기억인데, 원래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끝나지 않은 작업과 남은 페인트 통
어찌어찌 마무리는 했다. 멀리서 보면 나름 깔끔해 보인다. 하지만 창틀 마스킹 테이프를 뜯어낼 때 페인트 조각이 우수수 떨어지던 그 순간의 허탈함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결국 붓은 물에 헹구다 지쳐 베란다 구석에 처박아두었고, 3분의 1 정도 남은 페인트 통은 뚜껑을 꽉 닫아 창고에 넣었다. 다음번에 다시 칠할 일이 생길까? 아마 아닐 거다. 당장 눈앞의 거뭇한 곰팡이는 사라졌지만, 벽을 볼 때마다 내가 대충 덧칠한 흔적들이 너무 잘 보여서 씁쓸하다. 전문가가 왜 비싼 인건비를 받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마스킹 테이프 때문에 힘들었다니, 저도 비슷한 경험 한 적 있어요. 좁은 공간에서 혼자 하는 게 정말 쉽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