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외벽에 생긴 얼룩 때문에 시작했다가 일이 커졌다

빌라 외벽에 생긴 얼룩 때문에 시작했다가 일이 커졌다

빌라 외벽의 미세한 균열과 정체 모를 얼룩을 발견한 시점

인천 남동구의 오래된 빌라 밀집 지역에 위치한 4층짜리 빌라에 산 지 벌써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처음 입주할 당시만 해도 외관이 나름대로 깔끔하다고 생각했는데, 해가 갈수록 벽면에 거뭇거뭇한 빗물 얼룩이 흘러내린 자국이 짙어졌다. 특히 작년 유난히도 길었던 장마철을 보내고 나니, 건물 모퉁이와 계단실 창문 아래쪽으로 푸르스름한 이끼 같은 것까지 끼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1층 필로티 주차장 기둥 한쪽에 누군가 정체 모를 붉은색 락카 스프레이로 휘갈겨 쓴 낙서가 몇 달째 방치되어 있었다. 입주민 반상회 때마다 이 미관상 좋지 않은 낙서와 얼룩을 어떻게든 처리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물청소를 해주는 외벽청소 업체를 불러서 고압 살수로 씻어내면 그만일 줄 아았다. 하지만 몇 군데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외벽청소는 겉면에 묻은 이물질만 닦아낼 뿐, 이미 오래되어 바래고 갈라진 페인트 층을 메우거나 방수 처리를 해줄 수는 없다고 했다. 물때만 닦아냈다가 오히려 그 틈새로 물이 더 스며들어 내부 누수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결국 단순 청소가 아닌 건물외벽도색 작업을 통째로 진행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일반 외벽 청소와 도색 작업을 비교하며 고민했던 부분들

동네에서 흔히 보이는 소규모 빌라다 보니 아파트처럼 체계적으로 관리사무소가 있거나 매달 장기수선충당금을 넉넉하게 모아두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매달 걷는 2만 원 남짓한 기본 관리비로는 매번 청소비와 공동 전기세를 내기에도 빠듯했다. 결국 건물외벽도색을 하려면 빌라에 거주하는 여덟 가구가 십시일반으로 공사 비용을 모아야만 했다.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주변 지인들에게 소개받아 서너 군데 견적을 요청했다. 아파트외벽페인트 작업에 주로 쓰이는 일반적인 수성 도료부터 외벽 전용으로 나오는 특수 방수 도료까지 선택지가 다양했다. 견적을 받으러 온 업자 중 한 명은 최근 기후 변화 때문에 겨울에는 엄청나게 춥고 여름에는 폭염이 심해져서 건물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므로, 일반 페인트보다는 신축성이 좋은 방수 성능 도료인 ‘반트’ 같은 계열을 쓰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가격 차이가 꽤 났다. 일반 페인트로 칠하면 ㎡당 3만 원대 초반에도 가능하다고 했지만, 방수 기능이 들어간 특수 도료를 선택하면 ㎡당 4만 5천 원에서 5만 원 선까지 올라갔다. 건물 전체 면적을 대략적으로 계산해 보니 총공사 비용이 거의 800만 원 가까이 책정되었다. 매달 따로 모아둔 돈이 없는 상태에서 가구당 거의 1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한 번에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입주민들의 동의를 구하고 공사 비용을 분담하는 과정의 번거로움

입주민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험난했다. 1층에 사는 주민은 자기 집 벽면에는 얼룩이 전혀 보이지 않고 누수 피해도 없는데 왜 위층의 물 새는 문제 때문에 자신까지 똑같은 비용을 분담해야 하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반면 옥상 바로 아래층인 4층 주민은 장마 때마다 천장 구석이 눅눅해진다며 빨리 공사를 진행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식으로 날을 세웠다. 세대마다 처한 입장이 다르다 보니 단톡방에서는 매일 같이 언성이 높아졌고, 연락이 잘 닿지 않는 외지 거주 집주인들도 있어서 이들의 동의를 구하고 계좌로 공사비를 송금받는 데만 무려 3주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어떤 집은 사정이 어렵다며 반만 먼저 보내고 나머지는 공사가 끝나면 주겠다고 버텼다. 빌라 반장이라는 이유로 중간에서 조율하며 돈을 독촉하는 역할을 맡다 보니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고 있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우여곡절 끝에 계약금을 치르고 공사 일정을 잡았을 때는 이미 온몸의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5일 동안 창문을 열지 못하고 지냈던 실제 도색 작업 기간

드디어 공사가 시작되던 날, 아침 일찍부터 빌라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고압 물청소 작업을 위해 옥상 진입로에 줄을 매단 인부들이 벽을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고, 요란한 기계 소음과 함께 물보라가 사방으로 튀었다. 빌라 필로티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전날 저녁부터 신신당부를 했건만, 아침까지 차를 빼지 않은 차량이 두 대나 있었다. 차주들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어 차를 이동시켜 달라고 요청하는 동안 작업은 지체되었고, 인근 골목길을 지나던 행인들이 물이 튄다며 소리를 지르고 지나가는 바람에 사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청소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페인트칠을 올리는 5일 동안은 빌라 전체가 마치 거대한 감옥처럼 변했다. 창틀 마스킹 작업을 해둔 탓에 창문을 단 1센티미터도 열지 못했다. 한낮 기온이 28도까지 올라가는 날씨였는데, 실내 공기는 탁해지고 페인트 신너 냄새가 미세하게 창틀 틈새로 새어 들어와 머리가 지끈거렸다. 외벽에 매달린 인부들이 밧줄을 타고 창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사생활이 노출되는 듯한 묘한 불편함 때문에 온 집안의 커튼을 하루 종일 치고 컴컴하게 지내야 했던 것도 곤욕이었다.

도색 공사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지울 수 없는 몇 가지 의문점

5일간의 소란스러웠던 도색 작업이 모두 끝나고 비계와 줄들이 철거되자 빌라 건물은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칙칙했던 갈색 계열의 외벽이 깔끔한 연회색 톤으로 바뀌었고, 보기 싫었던 1층의 스프레이 낙서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하지만 공사가 끝나고 정산까지 마친 지금도 마음 한구석은 온전히 개운하지가 않다. 도색을 진행하면서 선택했던 연회색 페인트가 막상 벽에 다 칠해지고 나니 햇빛을 받을 때 약간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바람에 생각했던 톤과 미묘하게 어긋나 보였다. 게다가 공사 중반에 에어컨 실외기 거치대 뒷부분이나 가스 배관이 촘촘하게 얽혀 있는 구석진 곳들은 롤러가 잘 닿지 않아 대충 붓으로 슥슥 문지르고 넘어가는 것을 목격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자세히 들여다보니 칠이 얇게 들어가 바탕 벽면의 거친 질감이 그대로 비쳐 보였다. 업자에게 말해봤지만 그 정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며 얼버무렸고, 이미 잔금까지 치른 상태라 더 강하게 요구하기도 멋쩍어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다가오는 겨울철 한파에 이 벽면이 터지지 않고 몇 년이나 갈라짐 없이 잘 버텨줄지, 그저 비가 올 때마다 창밖을 내다보며 불안해하는 수밖에 없다.

댓글 1
  • 처음에 물청소만 하려던 거, 생각보다 문제가 좀 더 깊었네요. 특히 누수 걱정 때문에 마음이 많이 불안하더라고요.